칼럼 에세이

사실을 보는 눈 (송건호)
  • 날짜 : 2017-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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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신문들이 공정한 보도를 않고 일방적이며 과장된 표현을 한다고 불평하는 외국인이 있다. 군용견에 물렸다는 ‘평택사건’이 하나면 ‘사실’도 하나일 텐데 두 가지 ‘사실’이 보도된다면 묘한 이야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두 가지 ‘사실’ 중에 어느 편인가 한 쪽이 허위라고 생각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허위를 좀더 깊이 분석해보면 한 가지 보도가 전적으로 ‘진실’이 되거나 전적으로 ‘허위’가 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보도에는 누구에게나 하나의 자세가 있다. 자세가 다르면 하나의 ‘사실’도 독자에게 상당히 다른 이미지를 준다. 한국인의 도둑질을 보는 ‘눈’이 미국군인과 한국 신문기자와의 사이에 같지 않을 경우는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다.
  제임스 A. 미치너는 언젠가 한국에 관한 글에서 대부분의 GI가 코리안들을 디스파이즈한다고 쓴 적이 있다. GI가 모두 코리안들을 디스파이즈하고 있을 까닭은 없겠으나, 미국 GI의 ‘눈’과 비록 스네키를 할망정 동포를 보는 한국기자의 눈이 같을 까닭은 없다. 한 가지 ‘사실’이 독자에게 상반된 이미지를 주는 이유는 ‘눈’의 앵글이 서로 상반된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눈’의 앵글이 다르고서 한 사건을 양측이 똑같이 보기는 어렵다. 한 사건을 똑같이 볼 수 없는 한 양측이 하나의 이해점에 도달하기는 힘들다. 하나의 이해점에 도달키 위해서는 공통한 광장에 설 필요가 있다. 한 ·미 두 나라가 공통의 광장에 서려면 보다 두터운 신뢰와 이해가 필요하다. 진실한 신뢰와 이해가 있는 곳에 디스파이즈가 있을 까닭이 없고 우월감이 있을 까닭이 없다. 학생들의 데모 기세를 가슴 아프게 생각할수록 미당국의 보다 진지한 이해를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다.


(1962. 6. 8)


송건호 전집17 <현실과 이상>,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