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에세이

진상을 추구하는 풍토 (송건호)
  • 날짜 : 2017-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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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좀 하게.” 신문기자는 때때로 이런 질문을 받는다. 매일같이 신문을 꼬박꼬박 읽는 독자들도 기자라고 하면 반색을 하며 이런 질문을 한다. 기자는 세상 돌아가는 비밀을 따로 알고 있다는 눈치다. “신문을 매일 읽으면서 무슨 말씀을……” 이렇게 대답해도 독자는 납득하지 않는다. 기자는 세상에 말 못할 비밀을 꼭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신문을 믿지 않는 것인지, 신문이 말 못할 사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진상(眞相)’ ‘이면(裏面)’이라는 말에 한국사람들은 묘한 매력을 느낀다. 신문도 ‘진상’ ‘이면’이란 타이틀로 한몫 보는 경우가 이지만, 한 때 『진상(眞相)』이라는 잡지까지 나온 적이 있다. ‘이면’ ‘진상’이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나, 신문은 결코 진상을 발표하지 않는다는 신문불신론도 내포하고 있다. 한 사건이 터지면 신문보도 외에 꼭 그 진상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심리, 이것이 한국사람들의 뉴스관이다.
  의처증이 일종의 병이기는 하다. 하지만 의처증은 결코 병이 아닐 때도 있다. 뉴스에 꼭 진상을 요구하는 버릇도 뉴스 불신론자라고만 탓할 수 없다. 큰 뉴스가 터졌을 때 사람들은 모두 신경을 날카롭게 한다. 현대인은 알려고 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큼직한 사람’이 ‘큼직한 말’을 던졌을 때는 더운 ‘진상 욕(慾)’이 발동한다.
  그러나 꼭 무슨 말을 기대했던 입에서 ‘논평할 가치 없다’라는 말을 들으면 국민은 어리둥절해진다. 정말 일고의 가치도 없고 논평할 가치가 없는지 국민은 납득을 못한다. 논평할 가치가 없는 것은 당사자뿐, 국민에겐 크게 논평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논평할 가치가 없다는 말을 들으면 더욱 논평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호기심이 더욱 커진다.
  B라는 ‘사실’이 발표된다. 그러나 B만 발표되고 원인 A에 대해서는 충분한 발표가 없는 경우가 있다. B가 큰 뉴스면 아무리 논평할 가치가 없다고 우겨대도 국민은 믿지 않는다. A를 제멋대로 상상한다. 상상은 새로운 상상을 낳는 것이다.
쑥덕공론이 굶주린 뉴스욕을 채워준다. 유언비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유언비어를 없애는 길이 하나 있다. 속시원히 A를 밝히는 일이다. 독자가 기자에게 ‘진상’을 캐묻는 버릇이 없어지는 날도 이때다.


송건호 전집17 <현실과 이상>,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