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에세이

내 고향, 지금 어찌 되었나 (정달영)
  • 날짜 : 2017-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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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21)

춥지 않은 大寒에

 

  초겨울 들면서 바꿔 낀 스노 타이어가 눈길은 한번도 밟아본 일없이 빗길을 헤매고 다닌다. 이상한 겨울이다.

  연중 가장 춥다고 해서 대한(大寒)인데 기온은 종일토록 영상에 머물고, 그 대한이 끽소리 못하고 얼어죽는다던 소한(小寒) 역시 행세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벌써 물러갔었다.

  어제로 스물네 절기가 모두 지나갔으므로, 보름 뒤면 봄꿩이 스스로 운다(春雉自鳴)는 입춘(立春)이다. 그때쯤, 또는 그 뒤라도 늦추위가 예비되어 있겠지만,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이미 봄을 맞이한 듯 가볍다.

  올 입춘은 마침 ‘설날’에 잇닿아 있다. 구정(舊正)이며 민속의 날이며 갖은 구박 다 받다가 영문 모르게 복권됐다는 ‘오랜만의 설날’을 기다리면서,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지금

‘옛 고향의 그림자’를 생각할 것이다.

  고향의 영원한 모습은 언제나 흙내 풍기는 농촌이다. 지금은 도시의 아파트에서, 또는 달동네에서 밤하늘의 별 그림자 한번 살피는 일 없이 살아가지만, 그 모든 도시인들의 뿌리가 멀고 먼 농촌의 흙에 닿아 있음을 부정할 도리는 없다. 그들은 모두 뿌리뽑힌 자 되어, 잃어버린 고향의 흙내를 문득문득 떠올릴 뿐이다.

  그런데 그 고향땅, 그리운 그 농촌의 흙내는 지금 어찌 되었나. 누가 있어 옛 '설날‘을 지키는가. 떠나온 자의 귀향이 버려진 고향 땅에 무슨 뜻을 전할 수 있는가.

 

옛 農村 어디 가고

 

  들리는 소식은 자못 살벌하다. 농촌 주민의 집단시위와 저항운동은 전국 어디서나 ‘보통일’이 되었다. 답답한 처지를 호소하고 탄원하려던 행동들이 점차 체제저항의 성격으로 발전하는가 하면. ‘헌정사상 초유’라는 농민에 의한 군청사 점거농성도 드물지 않은 일로 확산되고 있다. 농성하다 잡혀가고, 잡혀간 사람 풀어라 다시 농성하고, 강제해산 하다가 또 충돌하고…고분고분 말 잘 듣던 그 옛날의 농민은 결코 아니다. 그 고향땅의 흙내 풍기던 정경(情景)도 물론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농촌은 있었으나 농촌정책은 없었다. 특히 5공화국의 농정은 “무사려(無思慮)한 복합영농정책이 빚어낸 대실패작”으로 손가락질 당한다.

  한 통계에 의하면 1981년부터 1986년까지 6년 사이에 농가 부채는 6.5배가 늘었고,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사이에는 300만 명이 넘는 농업인구가 농촌을 등졌다. 이농(離農)이 반드시 부정적인 현실을 반영한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것이 다른 산업부문의 ‘흡인효과’에 의한 것이 아니고 농촌 내부의 ‘배제효과’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 문제이다. 그들은 농촌으로부터, 자신의 오랜 고향으로부터 쫓겨났던 것이다.

  농촌에 대한 6공화국의 생각은 어떤가.

  지난 17일 노태우 대통령 연두회견에서 농촌에 관련된 문제가 언급된 것은 “무역마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농축산물 수입 제한조치들을 과감하게 폐지할 수밖에 없다”는 단 한가지였다.

  대통령의 “열 것은 열어야 한다”는 선언에 가슴이 철렁했을 농민들만 가여울 따름이다. 19일에 있었던 농림수산부의 업무 보고에서도 주로 강조된 일은 수입개방에 따른 농민 설득 대책이었다. 1988년 현재 농축산물의 수입자유화율은 83% 선을 유지했으나, 1989년에는 아마도 100%로 홀랑 알몸이 되고 말 것이다. 정부는 우리 농민들에 대한 가격지지정책은 없이 이른바 농외소득이라고 하는 농촌 공업화시책을 대안 삼아 제시하지만, 이것은 상공업 측면의 지역개발정책이지 농업정책은 아닌 것이다.

  우리의 농촌은 주곡농업을 포기하다시피 뒤로 돌려놓았을 때 이미 그 기능을 정지한 것이나 다름없다. 농민들은 ‘상업적 농업’으로 재빨리 전신하려고 했지만 그 결과는 이리 몰리고 저리 쏠리는 과잉 생산과 가격 폭락의 악순환을 불렀을 뿐이다.

 

小農經濟 살려야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지난 1979년의 58%에서 1988년 40%로 급락 추세에 있다. 오는 2000년에는 30%에도 미달하는 ‘식량이 불안한 선진국’이 될 전망이다. 농촌을 ‘완전히 숨 끊어 놓고’ 선진국이 되겠다는 것이지만, 이야말로 너무나 불안정하고 생각 모자라는 계획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지난 연말의 1988년 송년성명을 통해 “곡물생산이 2년째 계속 줄어 1989년에는 식량안보와 공급부족 간의 격차 때문에 중대한 시련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 일이 있다. 전문가들은 1989년의 국제 곡물생산량의 6년 만에 처음으로 소비량을 밑돌게 된다고 예측한다. 심상찮은 일들이다.

  농경제학자 김성훈 교수는 네덜란드의 간척농업, 스위스의 산악농업, 덴마크의 불모지농업, 이스라엘의 사막농업을 예로 들면서 ‘소농(小農)경제’ 로서의 우리 농업이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비교우위나 수익성을 고려해서가 아니라, 국민경제적 타당성과 사회적 기여도를 중시해서 경영의 고밀도화와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농업의 장래가 끝났다고 치부하는 사고방식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소농경제’를 기술혁신을 통해 발전시킨다면 수출지향의 구조로 우리 농촌을 바꿔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동차를 만들어 수출하는 실력으로 수출지향의 농축산업을 일으키지 못하는 법이 있겠는가. 농업이 ‘전(前)근대산업’ 아닌 ‘근대산업’으로 재평가받게 될 때, ‘설날’에 귀성하는 도시인들의 마음도 한결 더 가벼울 수 있을 것이다.

 

정달영 <나는 부끄러움을 찾았다>, 사람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