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에세이

한국 축구, 한국 경제 (정달영)
  • 날짜 : 2017-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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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2.18)

  비관론 일색인 우리 경제

  

비자금 관련 재벌총수들이 항소심에서 일제히 실형을 모면한 것은 최근의 극심한 경제불황 ‘덕분’이었다는 배경분석이 재미있다. 재판부는 이들 재벌총수의 “한국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와 “그룹 회장이 뇌물사건의 피고인으로 있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해외시장에서의 어려움” 등 정상(情狀)을 작량(酌量)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에 앞서, 모든 지표와 전망에서 비관론 일색인 우리 경제의 참담한 오늘이 법적용 논리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추정이다. 실제로 우리 경제의 지표는 상황이 절박하다.

  나라의 총 외채가 1천억 달러를 넘었다. 올 경상수지가 적자가 23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연구기관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내년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올보다 더 늘어날 것이라는 데 전망이 일치한다. 숫자에 어두운 사람도 이런 경제가 위기적 상황임을 모를 수 없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국제경쟁력의 추락이다.

  경쟁력은 그것 없이는 국제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절체절명의 핵심요소인데, 우리는 앞서간다고 내세울 것이 별로 없다. 후발 개도국들에 덜미를 잡히는 모습은 전반에는 앞서다가 후반에 와르르 무너져 무더기 골을 먹는 우리 축구를 많이 닮았다. 왜 이런 지경이 되었는가.

 

 정치 논리가 경제 망친다

  

  축구로 치면 ‘아시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최강’입네 방심한 오만이고, 무계획이다. 경쟁력으로 치면 무더기 골을 먹도록 무기력 경제 체질을 방치해 온 정치권의 책임이다. 한국을 무참하게 무릎 꿇린 이란 축구의 감독은 그 전날 경기 전망을 묻는 기자들에게 “한국은 이미 아시아 축구의 맹주가 아니다”고 단언했었다. 그의 말은 정확했다. 그들은 후반에만 5골을 몰아넣으며 한국의 추락을 철저하게 확인했다.

  축구와 국제경쟁력의 동반추락은 서로 닮기는 했으나 똑같이 사활적인 비장감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찬바람 몰아치는 생존의 그라운드는 경제 쪽의 가파른 현장에 있다. 1996년의 세밑에 한국의 월급쟁이들은 ‘나의 일자리’가 불안해진 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지금은 ‘월급 올려받기 보다 직장의 내 자리 유지하기가 더 중요해진’ 시절이 됐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달라지고, 세상이 급히 변하고 있다.

  열흘 남짓 앞으로 다가온 1997년이 더 조심스럽고 더 걱정스러운 까닭은 ‘정치의 해’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어두울 것으로 예고된 경제가 대선바람에 휘말려들 가능성이 놓다. 대선을 의식한 정치적 논리가 경제의 기본원리에 우선하는 상황이 전개될 경우 우리의 새해 경제는 혼란과 위기와 파국을 맞이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신경제’의 실종


  정치논리는 여론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위험하다. 이성적이고 합리적 파단에 따라 움직이는 대신에 감성적이고 즉흥적으로 판단하기 쉽다. 흔히 ‘국민감정’을 내세워 표와 인기를 따라가는 것이 정치논리다. 국민경제의 장래를 내다보기보다 눈앞의 표를 모으는데 열중하는 정책은 경제를 망친다.

  클린턴이 재선에 성공한 이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였다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의 문민정부는 행여나 ‘경제’를 업적으로 내세울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임기를 1년 남짓 앞두고 지금 시작해서 업적으로 남길 수 있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요즘 국회에 의원입법 형식으로 제안되고 계류 중인 몇몇 법안들은 업적이 되기보다는 나라의 장래에 유해하게 될 수도 있는 독소가 우려된다. ‘표’를 탐해서는 좋은 정책이 될 수 없다.

  문민정부 출범 초기에 나라 안에는 ‘신씨들의 행진’이 요란했다. ‘신한국’ ‘신경제’를 필두로 ‘신정치’ ‘신안보’ ‘신외교’ ‘신사고’까지.

  그중 ‘신한국’ 하나는 집권당 당명에 남아 있으나, 나머지들은 종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중에도 위력이 대단해 보이던 ‘신경제’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살아서 ‘신한국’을 구출하는 날이 올 것인지 궁금하다.

  인기 있는 정책으로 경제를 회생할 길은 이미 없다. 어렵고 인기 없어도 경제논리에 충실한 정책, 정치바람이 철저히 배제된 경제정책이 운용돼야 경제가 살고 나라가 선다.

  경제위기를 헤쳐 나가는 유일한 처방도 다만 ‘국민이 잘해야’한다고 다그침 받는, 그래서 지갑 속의 마지막 달러 화폐 한 장을 찾아들고 길거리로 나서는 이 착한 국민!

  그런데도 김수환 추기경이 말하듯이 “한국이 경제적 난국에 처하게 된 책임은 분수를 모르고 흥청망청하며 사치와 과소비에 흘렀던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뼈아픈 자책부터 앞세워야 하는, 이 불쌍한 국민!

  중요한 대목은 그 다음에 이어진다. 이 모든 위기와 난군은 “우리의 삶을 반성하고, 다시 부지런히 일하고, 상부상조 할 줄 아는 민족이 되라고 그분께서 채찍을 드신 것”이라는 덧붙임이다. ‘하느님의 채찍’을 지금 우리는 맞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소설(小雪)이 지난 게 언젠데 겨울비가 그치지를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계속될 비는 아니다. 이 비가 개면 아마도 혹한이 엄습할 것이다. 혹한이라는 표현보다 더 춥고 더 황량한 대량해고의 회오리가 12월을 예비하고 있다. 불과 2년 전에 2조 5천억 원의 순익을 냈던 초우량 첨단기업이 지금은 스스로 ‘생존의 위기’를 말하는 지경이다.

  몇해 전 ‘내 탓이오!’ 캠페인을 벌였던 한 단체가 올해에 내건 슬로건은 ‘이제 제자리를 찾아 나섭시다’라고 한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론까지 나오기에 이른 국민적 분노가 설 자리는 지금 어디란 말인가. 국민은 언제나 소외되고 당하고, 그래서 분노하지만, 국민이 제자리를 잡지 않으면 이 나라를 지탱할 힘은 어디에도 없다. 분노를 삭이면서 결국 국민은 제자리를 찾아 나설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대통령을 잘 뽑는 것은 그 같은 제자리 찾기의 첫걸음이다. 그것이 바로 계획된 일이고 필연이다.

정달영 <나는 부끄러움을 찾았다>, 사람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