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에세이

아니다, 이 모습이 아니다 (정달영)
  • 날짜 : 2017-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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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3.19)

  本과 末의 혼동


  가령 ‘O양의 비디오’ 따위는 신문이 제아무리 심각하고 엄숙한 현안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한들 세상의 흥미와 관심에서 앞선다. ‘현안’에 무슨 하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심사가 본래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 인구의 12%쯤이 일거에 빈곤층으로 전락한 처지에 연봉이 몇십억이라는 청년 펀드매니저나 회사값이 몇십억 달러라는 재미한인 벤처기업가의 ‘성공담’이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현상을 다만 천박하다고만 치부할 계제도 못된다. 실업자의 문제는 실업자의 문제로서 심각하고 성공담은 성공담으로서 소중하다.

  문제가 있다면 본과 말의 혼동이다. 아예 본을 잃어버리거나 말로써 본을 지워 없앤다면 그때는 큰일이 된다.

  경우가 꼭 같다고 할 수는 없으나 요즘 신문에서 걱정스러운 현상을 자주 만나게 된다. 경제위기 극복의 섣부른 낙관론 전파가 그 하나다. 국가부도라는 파국을 모면한 것은 사실이지만 외환위기가 근원적으로 수습된 것은 아니다.

  외채는 그대로 남아 있고 무역흑자는 수입을 하지 않기 때문이며, 늘어난 외환보유고의 상당 부분은 차입한 것이다. 그러고도 위기의 변수는 너무나 많다.

  그런데도 ‘위기 극복’은 알게 모르게 기정사실로 홍보된다. 그리고 정부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한마디가 있다. ‘고성장’이다. 지나간 30년의 고도성장 체질이 격렬한 금단현상을 일으키는 탓이라기에는 걱정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IMF체제를 이미 ‘졸업’한 것으로 착각하는, 누구에겐가 그렇게 유도된 행렬이 지금 이리저리 몰리고 있다. 그 행렬은 백화점의 고급 외제품 매점에도 있고, 공항의 출국장에도 있고, 아파트 분양 현장에도 있다. 심각한 것은 경기 진작에 애타는 정부가 부동산 부추기기에 앞장 서고 있다는 점이다. 그린벨트 풀고, 준농림지 규제 풀고, 양도세 없애고…·.

  이야말로 악몽일 수 있다. ‘경기부양’의 이름으로 땅값에 불을 지른다. 70년대, 80년대 천정부지로 치솟은 땅값이 국가경제를 거품으로 풀어헤치고, 그것이 결국 IMF체제로 직행한 지름길이었음을 모르지 않으면서, 지금 정부는 그 땅값에 건곡일척의 베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무지 꿈쩍도 않는 경기를 이렇게라도 건드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정부의 생각이 비장할 뿐이다.


국가재생의 보약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경기를 활성화하고, 그리하여 하루빨리 국가경제의 재도약을 이루자는 뜻은 옳지만, 그래도 이것은 아니다. 이런 모습으로 손쉽게 우리 경제가 회복되어서는 안 된다. 손쉬운 회복은 우리 사회를 또다시 부패의 천국으로 몰아넣는 악마의 유혹이다. 시련이 더 혹독하지 않고서도 회복되는 경제도 약이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더 부패할 것이다.

  이 예언자적인 말씀은 우리 사회 한 원로가 최근 어느 공개석상에서 털어놓은 눈물의 경고다. 이 분은 IMF체제라는 청천벽력을 맞았을 때에도 “이제 살았구나! 하늘이 주신 기회요 축복이다”라고 외쳤던 사람이다.

  온 천하가 탈세·사기·뇌물·부패로 가득 찬, 국민청렴도 세계 44위의 나라에서 소돔·고모라 따로 없이 향락에 빠지고 저마다 기고만장, 천민근성에 젖은 백성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깨우침의 기회가 또 있겠느냐는 것이다.

  단단히 깨우쳐야 할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경제환경이 저성장시대라는 사실이다. 부동산 투기로 떼돈 버는 ‘신화’는 더 이상 없는 사회라야 한다는 것이다. 욕구를 억제하고, 기대를 낮추고, 겉치레를 버리고, 그리고 가진 것을 나누는 봉사정신이라야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는다. 생각을 바꿔야 산다.

  21세기는 물질의 축적이 주는 행복보다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가치가 더 소중하게 존중되는 사회. 국가나 개인의 이기주의가 아니라 공동선을 먼저 생각하는 시민이 만들어 가는 사회라야 한다. 지금 우리가 겪는 시련은 쓰고 힘들고 괴롭지만 국가 재생의 보약이다.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패구조에 대한 과감하고 전면적인 개혁의 기회는 그러나 바야흐로 사라져 가는 중이다. 도덕 재생의 의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정달영 <나는 부끄러움을 찾았다>, 사람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