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에세이

옳다는 것 (천관우)
  • 날짜 : 2017-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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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우-옳다는 것


  국민교육헌장을 읽어 보시오. 「정의」라는 대목이 전혀 비치지 않는단 말이오.

  누군가가 그런 귀띔을 하기에, 4년 남짓 전에 발표된 이 文書를 새삼스럽게 찾아 읽어 보았더니, 과연 그 말이 맞았다. 기왕 어린이, 젊은이들에게 나라의 이름으로 주입하고 있는 이 문서인 바에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 한 마디 집어넣어 달라고 요구를 아니할 수 없다.

  국민교육헌장의 그 많은 덕목들은 왜 필요한가. 바르고 옳은 세상 만들어 보자, 그러기 위해 바르고 옳은 일 해 보자고 해서 그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외곬으로만 보는 것이라고 할는지도 모르나, 국민교육헌장이 정의라는 덕목에 인색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뒤집어 말하는 것이 빠르다. 헌장의 표현 그대로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 청년이 여기 한 사람 있다고 하자. 그런데 다른 모든 것이 갖추어진 그 청년이, 유감스럽게도 정의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다고 하자. 그 청년의 성실과 건강과 학문과 기술과 창조와 개척이, 정의를 향해 간다는 보장이 없다면, 모든 것이 갖추어진 그 조건이라는 것이 어디로 動員될 것인지, 두렵게 될 경우도 있을 듯하다.

  거의 새로 만들다시피한 지난 번 헌법개정에도, 3·1정신이나 4·19정신은 다행히 그대로 살아 남았다.

  지난 번 3·1절의 都下 각 신문의 기념 논설들을 보자니, 3·1운동은 「민족주체의식」의 발로였다던가 「국민총화」의 실현이었다던가 하는 면을 주로 강조한 것이 많았다. 이제는 3·1 정신의 해석도 많이 달라져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3·1정신이나 4·19정신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正義를 위한 용감한 실천, 不義에 대한 용감한 저항이라는 면이라고 하고 싶다. 그것이 기둥이요 뼈다귀다.

  3·1운동이나 4·19운동에서 연상되듯이, 「의로운 일」이라면 우리네 凡人은 여간 근접하기 힘든, 어떤 엄숙한 것을 느끼게도 되지만, 같은 말도 「바른 일, 옳은 일」이라면 누구나가 우선은 그렇게 해 보려고 마음먹는 일이요, 자기는 그렇게 못하더라도 자기의 아들 딸들에게는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일일 것이다.

  성실과 건강과 무엇과 무엇, 그 모든 것이 갖추어졌으되, 정의에 대한 관념이 엷은 청년이, 3·1운동이나 4·19운동에 참여할 수 있었을까? 그런 거창한 「의로운 일」은 고사하고, 평소의 대인관계나 직업상의 일에조차, 의리 없는 일쯤 눈썹하나 까딱 안하고 해치울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아들 딸들은 그런 사람으로 기르고 싶지 않다면, 국민교육헌장에 정의의 한 대목은 마땅히 들어가야 하겠다는 말이다.

  얼마 전에 「의리의 사나이 돌쇠」라는 말이 우스개로 곧장 화제에 등장한 일이 있었다. 어느 TV 드라마에 나온 돌쇠라는 이 「의리의 사나이」를 嘲弄한 것은, 우선 그가 천한 남의 집 종인데다가, 그나마 아주 코믹하게 그려진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뿐일까. 그가 고지식한 「의리의 사나이」이기 때문에, 그런 인간형은 時代의 感覺에 맞지 않기 때문에, 비웃은 구석은 없었을까? 정의다, 외롭다 하는 것을 정면에서 비웃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런 인간형을 만나면 자연히 비정상으로 보게 되어 있는 것일 것이다.

  만일 그 「의리의 사나이」가, 돌쇠처럼 천한 인물이 아니고 코믹하지 않은 인물이었더라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생각해 보자. 어떤 사업가의 충신·열사론을 경청한 적이 있다.

  『누구 못지 않게 나도 존경도 해요. 그러나 말하자면 일종의 독종이 아닐까요. 자기를 희생하고 심지어 자손까지도 고생시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굳이 그런 길을 택한 건, 보통 독한 마음 아니고는 안될 거예요.』

  그가 말하는 독종이란, 처음부터 헐뜯자고 하는 것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역시, 충신·열사가 독종이라는 비정상적인 유형의 인물로 비쳤던 것이다. 이 경우는 표현이 유난스러울 뿐이지, 「의리의 사나이」를 비정상으로 보는 생각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반드시 이 실업가 뿐일까.

  의롭다는 인간형이 시대의 감각에 맞지 않아서인가······라고 했다. 그런 인간형을 비정상으로 보는 것은 오랜 유래를 가진 것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사회는, 「의롭다는 것」은 둘째요, 「바르고 옳은 것」이 무엇인지조차 판단하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는 성싶다. 그러니 시대의 감각이라는 것도 그렇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두고 있는 바둑을 새로 두자고 판을 뒤엎으면 싱거운 사람이라고 하면서, 큼지막한 일을 덩어리째로 그리고 무더기로 바꾸는 데에는 아낌없이 갈채를 보내기도 한다. 자식을 욱박질러 말도 못하게 하면 참을성 없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어느 신문을 보나 예외없이 똑 같게 吉報만의 세상이 되어도 시끄럽지 않아 다행이라고 하기도 한다.

「힘이 곧 正義」라고 한 것은 진부한 格言이라고들 하더니, 우리주변의 시대감각은 이것이 진부한 것이 아니라 가장 앞선 것,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느끼게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정의는 역시 정의 그대로 따로이 있다. 힘이 곧 어느 경우에나 정의일 수는 없는 것은 분명한 것이다.

  국민교육헌장을 굳이 흠 잡자는 것은 아니다. 짧은 문장에 많은 덕목을 집어 넣자니, 들어가야 할 것이 어쩌다가 빠진 것일 것이다. 그러나 말이 난 김에 한 두 가지 말을 더해야 하겠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자」고 한다. 한 편에 「공익과 질서」, 또 한편에 「개인의 권리와 자유」, 이 두편이 잘 균형되고 조화되기를 바라야지, 그 어느 한 편을 「앞세우라」니,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우리는 지금 제 밥도 제대로 못 찾아 먹는 일이 많으니 말이다.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고 한다. 「자유와 권리를 찾아서 누리라. 그와 동시에 책임과 의무도 다하라」ㅡ 이렇게 일러 줄 친절이 아쉽다. 국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는 다해도 자유와 권리는 굴러 들어오지 않는 일이 많은 것은, 모를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공익과 질서」, 「책임과 의무」, 이것도 모두 정의와 무관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주어진 정의를 성실하게 지켜나간다는 소극적인 측면이라는 느낌이 든다면 잘못 안 것일까? 도대체 정의란, 주어진대로 성실하게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주어진 것 가운데 정의는 취하고 정의가 아닌 것은 버리는 것부터가 정의일 것이다.

  「자유와 권리」는, 3·1운동이나 4·19운동에서 보듯이, 없으면 찾아서 얻고 빼앗겼으면 싸워서 얻는 정의가 아닌가. 헌법의 기본 정신이 아직도 3·1정신이요 4·19정신이라고 하는 바에는, 국민교육헌장에서 정의의 한 대목은 결코 빠져서는 안되겠고, 자유와 권리는 좀더 力點을 두어 강조되어야 하겠다.

  헌법의 기본 정신을 들출 것까지는 없다. 자유와 권리는 인류가 최근에 와서야 찾아낸 재산이라고 하자. 그러나 정의는 예부터 소중히 여겨온 재산이다. 정의를 생명으로 아는 기풍은, 그 사회 그 나라의 元氣다. 이 원기가 줄어 시들시들 맥을 못추게 되면, 사회는 문드러지고 나라는 기울고 하는 것을, 세계의 역사에서 또 우리의 역사에서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흔히들 인류의 역사는 자유를 찾아 자라온 역사라고 한다. 그 길은 험하기도 했고, 그 어느 부분만을 떼어 보면 도리어 역전의 국면도 많았다. 그러나 그 全過程을 大觀하면, 역시 자유를 한 발자욱 한 발자욱 키워온 역사라고 하는 것일 것이다.

  흔히들 事必歸正이라는 말을 쓴다. 가다가는 부정과 불의가 이기고 판을 치는 수도 있지만, 결국 正과 義가 이기고 만다고들 한다. 그렇게 본다면, 인류의 역사는 정의를 찾아 자라온 역사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정의는 결국 이기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부정 불의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이 스스로를 달래 보는 말투는 아닐까? 물정에 밝다는 이들일수록, 그런 것은 순진한 책상 물림들의 환상이요, 허황한 기대라고, 마음 속에서 비웃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사필귀정인가 아닌가. 의인이나 선지자처럼 앞 일을 내다보려 해서 될 일도 아니고 점장이에게 물어 거기에 매달릴 일도 아니다. 다만 사필귀정은 이것을 믿어야 되겠다는 것이 지금 나의 생각이다.

  4·19운동이 혁명이냐 아니냐로 論難을 벌였을때,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4·19운동이 혁명이었다고 하는 것과, 그것이 혁명이어야 하겠다고 하는 것은, 서로 깊은 관련이 있어 보였던 것이다. 객관적 과학적인 관찰을 마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과, 우리가 믿는 것은, 결코 별개가 아닌 듯하다는 말이다.

그런 뜻에서 나는 사필귀정을 믿으려 하는 자이다.

(<씨알의 소리>·1973.3.)

<천관우 산문집>, 심설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