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에세이

왜 그렇게 권위에 약할까 (선우휘)
  • 날짜 : 2017-05-17
  • 조회수 : 545

선우휘-왜 그렇게 권위에 약할까

 

마르크스 허상 외면

  <한국인은 권위에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럴 때 나는 그 내용보다 <한국인은 ……>이라고 한정해 말하는 게 싫다. 한국인이 <한국인은 ……> 하고 말할 때는 대개가 자랑이기보다 자모 자학이어서 언짢다. 거드름도 곤란하지만, 공연스레 기어들어가는 것을 마치 지식인이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처럼 생각하는 경향마저 없지 않은 것이다.

  물론 한국인이 권위에 약한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더욱 외국이나 외국인의 권위에는 약하다. 같은 한국인이나 나라 안의 권위에는 맞서기도 하고 빈정대기도 하지만, 외국의 권위라면 거의 꼼짝을 못한다. 그러나 권위에 약한 것이 어찌 우리 한국인뿐이겠는가? 외국인도 마찬가지, 아니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요즘 전해지는 각종 보도나, 가능한 한 직접 수집해 보는 <마르크스 사후 1백주년>에 관한 생사 소식(특히 서방 세계)에서 그 점을 너무나 절실히 실감하고 있다.

  그 인상을 간추리면, 만약 <마르크스가 지금 다시 살아나면, 세상이 자기 이른대로 되지 않는 데 몹시 실망할 것(또는 슬퍼할 것)>이라는 것이다.

  공산 사회를 야유하는 견지에서 그려는 것이라고도 생각되지만, 그보다는 그의 이론은 옳았는데, 그 이론을 실천한 자들이 나빠 그가 실망할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편이 강해, 잘못하면 마르크시즘의 정당성이나 그에 대한 신뢰성은 전혀 손상되지 않고 성역으로 남겨질 폐단조차 없지 않은 것이다.

  서구의 진보적 지성들이 아직도 마르크시즘에 연연한 나머지 마르크시즘이 후진적이며 슬라브적 야성이 남아 있는, 러시아라는 특수한 사회에 무리하게 옮겨졌기에 오늘날 소련이 그 모양 그 꼴이라느니, 중공도 아직 마르크시즘을 받아들일 바탕이 되어 있지 않는데 무리하게 그 이론을 적용시켜서 혼란을 거듭하느니, 공산 북한의 권력 세습도 마르크시즘과는 전혀 관계없는 데서 생겨났느니 하는 말을 들으면, 황당무계한 미신적 현상을 눈앞에 보며 교조의 가르침은 옳았는데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졸도들이 나쁘다는 사이비 종교를 옹호하는 변명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제자>들만 나쁘다니

  유럽 코뮤니즘을 번적거려 보이는 것도 웃기는 그들의 버릇이다.

  <마르크스가 자기는 결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했다는 말의 뒷받침도 그를 변호하는 궤변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그들이 옹호하듯이 마르크스의 이론과 행동은 옳았는데, 뒤따른 실천자들이 잘못하여 공산 세계는 이제까지 갖가지 실수를 저질렀단 말인가? 천만에!

   오늘날, 우아하게 마르크시즘을 믿는 서방 지식인들이 공산 세계에서 생긴 엉뚱한 사건에 당황할 때마다 그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안성마춤의 대상은 스탈린이다.

  그 경우, 스탈린만 죽일 놈이지, 레닌도 신성 불가침의 존재로 남는다.

  <레닌은 생전에 스탈린의 거친 성격을 싫어하고 경계했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그게 정말일까? 그것도 천만에! 레닌의 충실한 수제자가 스탈린인 것이다. 스탈린의 잔인성, 모락성, 인간 자유에 대한 적대감이 다름아닌 레닌한테서 배웠다는 것은, 레닌과 러시아 공산 혁명에 관한 몇 권의 책(결코 비판서만이 아니다)을 읽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 도처의 공산주의자들이 그 삶의 근원으로 삼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마르크스만은 남는 셈이 되는데 그러면 마르크스만은 끝까지 완전한 교조로 남는 것일까? 그것도 역시 천만에!

  1백 년 넘어 공산주의가 저지른 잘못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랄 만큼 마르크스에 이르고야 만다. 파리 코뮨이란 인민 봉기에 대한 절대적 관심, 공산당 선언, 1872년 인터내셔널 회의에서 경적을 몰아친 술수, 그럼으로써 빚어진 실천강령으로서의 마르크시즘이 러시아 혁명, 서반아 내란을 일으켰고, 세계 각처에 만연하여 급기야 그 흐름은 1950년 북괴에 의한 남침을 초래한 것이다.

  

혁명가들에 염증

  마르크스는 조국이 있고, 있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조국이 없다고 하여(속셈은 달랐다는 설도 있다) 세계적 단결을 호소하였지만, 제 2차 대전 때 소련의 붕괴의 위기에 처하여 스탈린은 러시아의 깃발(애국심)을 내어 흔들어서야 간신히 전쟁을 이길 수 있었고, 신은 없고 종교는 아편이라고 함으로써 물질적인 것에 가치를 두지 않고 정신적인 것에 높은 가치를 두는 많은 훌륭한 사람들을 탄압하고 추방하고 처형케 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ㅡ 마르크시즘은 가장 섬세한 인간 존재들, 또 보다더 복잡한 인간 결합체인 사회를 해명하는 데 있어서 놀라운 조잡성을 발휘했다 ㅡ 는 것은 오랜 경험과 관찰에서 얻어진 정곡을 찌른 정평이다.

  해방 다음해 봄, 진주한 소련병들의 포악한 행동과 내외에서 나타난 공산주의자들과 혁명가들의 팸플리트적인 치졸한 주장에 염증을 느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로 화차편으로 공장 시설을 뜯어 소련으로 가져가는 것을 보다가, 유혈의 신의주 학생 사건의 직접 목격을 계기로 38선을 넘어 남하한 뒤, 본사 기자로 근무하면서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하여 차차 남한의 실정을 알고 놀란 것은 이북과는 정반대로 웬 진보적이며 유물적인 혁명 의식을 가졌노라는 지식인들이 이렇게도 흔한가 하는 점이었다.

  「마르크스주의 혁명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이북에서 뭣하러 양키와 보수 반동분자들이 우글대는 남한에 왔느냐」는 동창이 있는가 하면,

  「저도 일제 때는 페이비언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졌었읍니다만 직접 소련군이 점령한 이북을 보니 도저히 공산주의에 희망을 가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라는 몹시 조심스러운 질문을 한 나에게 어느 선배격인 지식인은 느닷없이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었나?」라고 묻는 것이었다.

  그래 정직하게 「아직 못 읽었읍니다」라고 대답했는데 일언지하에 「그것도 못 읽고서야 얘기가 되나」라고 하기에 「곧 얻어 읽어 봐야겠읍니다」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자네, 독일어 할 줄 아나?」

라는 것이어서 어리둥절해

「모르는데요.」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는데

「자본론은 일본말의 번역 같은 것을 읽어서는 안돼, 반드시 독일어 원서로 읽어야지.」

라고 하여 완전히 무시당했던 기억이 어제처럼 생생한 것이다.

  

읽지도 않고 신봉

그런데, 얼마 뒤 확인한 것은 그 선배격인 지식인이 독일어는커녕 영어도 제대로 모를 뿐 아니라 좀 어려운 일본말 서적의 해석조차 시원치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무슨 말 번역의 자본론인들 읽었을 턱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나한테 그처럼 자신있고 거만하게 한 말이란 도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그때 나는 그렇게 자문했었다.

그 후 그 동창생(그는 후배였다)과 선배는 6·25때 이북으로 갔다는 말을 들었다.

동창생은 거기서 혁명 과업에 열중하다 죽었는지 아직 살아있는지, 또 선배는 열심히 러시아말을 배워 러시아어판의 자본론에 통달했는지 모르며, 지금 생각하면 해방 직후에는 대개가 세태의 큰 변동에 이성을 잃은 시대여서 그랬는지 모르나, 두고두고 그 두 사람을 생각할 때 느껴지는 것은 스스로 명석한 두뇌를 자랑하는 지식인의 공통된 자기 과신의 거만성이요, 지적 허영이었다.

  동지 엥겔스가 정리한 칼 마르크스의 학설이 거대한 사상 체계를 갖고 있어서 일생을 소비해도 연구를 완성시키기 힘들다는 말도 있으나, 내가 30여 년 간 내 나름으로 생각하고 그에 관한 저서를 뒤적이다가 얻은, 세계사에 재앙을 뿌린, 그의 그 사상적 핵심은 <계급적 증오를 매개로 하여 보편적인 사랑의 체제 구축을 바란 모순>에 있는 것으로 믿는 것이다. 그것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영국의 석학 E H 카의 유명한 저서 무정부주의자 《파쿠닌》의 제 31장 가운데 나오는 날카로운 지적이다.

  

죄악 면죄될 수 없어

  증오를 매개로 삼아 사랑의 체계를 구축하는 것, 그것은 국한된 범위 안에서 제한된 한때는 가능할는지 모른다(대항 경기에 이긴 한 패가 잠시 기쁨을 나누는 것 같은 경우처럼). 그러나 <대립한 한 쪽>의 증오를 매개로 <보편적>인 사랑의 체계를 구축한다는 것은(더욱 영원히)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의 사상의 근원만 보아서도, 그의 사상 체계가 제 아무리 방대한 체제로서 학문 연구의 놀라운 대상이라 할지라도, 그로 말미암아 이제까지의 세계 역사에 아로새겨진 피비린 잔인한 죄악에서 면죄될 수는 없는 것이며, 세월이 흘렀다고 하여 외경의 대상이 될 수도 없는 것이다.

  몇 년 전 일본의 한 마르크스 학자가 모스크바 대학의 마르크시즘 연구의 대가를 찾아가 논쟁을 버려 보려고 단단히 벌렸더니 그가 마르크시즘에는 관심을 안 보이고 일본의 부엌 시설이나 화장실 시설에 관해 자꾸 묻는 바람에 몹시 실망했다는 글을 읽고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린 적이 있었다.

  「진정으로 실망한 것은 과연 어느 편이었을까.」


선우휘 <아버지의 눈물>, 동서문화사